2022년. 잘 버티기의 역사

인생은 버티는 거야 😎

hankyeolk


그렇다. 22년 상반기 회고를 늦게 했을 때만 해도 약 6개월이 남아서 언제 끝나나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엊그제 같다’라는 내가 싫어하는 표현을 써가며 이 한 해 회고를 작성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이동한 팀에서 적응하는 게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친한 동료도 많고 나를 도와주는 장치들도 많아서 업무와 팀 문화에 적응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편하게 지내고자 하는 게으름이 물들었다. 의욕이 떨어지고 주변 상황 탓을 하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업무에 기여했다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에만 몰입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성장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진 것도 한몫했다. 아니 정신적으로 힘들어진 것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걸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내 컨디션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면 안 되지만 나는 그걸 이해해달라고 강요했던 것 같다. 이 점을 정말 반성하고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을 다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을 내년 목표로 정했다.

이번 하반기에는 나의 앞으로 와 나의 삶과 행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 해를 디자인하려고 한다. ‘잘 버텼으’라는 소중한 한마디를 남기면서 어김없이 올해도 ‘올해의 000’를 남겨본다.

올해의 선택

팀 이동과 여름휴가 그리고 컷트

(올해의 선택을 하나만 고르기가 어려워.. 올해는 3가지!)

9월. 나는 한 달을 꼬박 준비한 팀 이동에 성공했다. 포지션이 변경되지는 않았지만 수행해야 하는 과업과 수행하는 팀원이 완전히 새로워졌다. 옮긴 팀에서 이제 3개월 정도 지내고 있는데, 새로운 부분도 많고 다가올 23년에 챌린지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몇 있어서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좋은 동료들과 만날 수 있어서 절거운 상태다.

8월. 일과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여름휴가’라는 것을 가게되었다. 우리 집은 여름, 겨울 휴가를 따로 정해두고 떠나지 않았기에, 정말 쉬면서 먹고 놀기 위해 여름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이 낯설었다. 그런데, 그런 낯섦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하루하루 매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포항에서 서핑도 하고, 십년지기 친구들과 아주 어릴 때처럼 하루 종일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빡빡하게 고민만 가득한 내 머릿속에 ‘쉼’이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하게 알려준 정말 소중한 떼어냄이었다.

4월. 6월. 그리고 9월. 500일 넘게 기르던 장발 상태의 머리를 허쉬컷 → 중발 → 숏컷으로 짧게 쳐냈다. ‘올해 말까지 기를 수 있을 만큼 최대한 길러야지’라고 했던 다짐은 뜨거운 여름에 쉽게 굴복당했다. 1년 넘게 길렀던 머리가 뭉텅이로 잘려 나갈 때는 정말 살짝 눈물이 고일뻔했다. 짧은 머리도 퍽 잘 어울려서 기분은 좋았다.

올해의 콘텐츠

올해의 노래 - 빅뱅 <봄여름가을겨울>

정말 오랜만에 빅뱅의 신곡이 업로드되었을 때, 소주를 3병 정도 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출장 마지막 날을 보내고 마신 듯?) 숙소에 돌아와서 정말 뜨거운 물이 받아진 욕조에서 빅뱅의 신곡과 뮤직비디오를 무한 반복했다. 아련했던 나의 어린 날이 스쳐 지나가면서 빅뱅 시대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_22년에는 정말 노래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올해의 드라마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최근까지 <재벌집 막내아들>도 재밌게 봤지만, 그럼에도 22년에 딱 기억나는 드라마를 고르라고 한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고를 것이다. 보통 따뜻한 내용을 다루는 드라마는 금방 질려서 1 ~ 2화에서 멈추곤 하는데, 우영우는 봤던 장면을 짤로도 몇탕 더 할 수 있었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당시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상태였는데, 우영우와 박은빈 배우를 만나면서 많이 위로받을 수 있었다. 정말 오랫동안 추억에 남을 드라마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올해의 영화 - 탑건: 매버릭

톰 크루즈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멋진 중년 남성일 것이다.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너무 멋있고 섹시하다. 극장에서만 2번을 봤다. 2D로 먼저 보고 안되겠다 싶어서 4D로 흔들리면서 봤다. 마블 시리즈 말고 탑건의 새로운 시리즈가 매년 나왔으면 좋겠다. <탑건 : 매버릭>을 영화관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올해의 외국드라마 - Super Pumped

우버의 탄생과 흥망성쇠를 그린 드라마 <Super Pumped>를 보기 위해서 티빙 이용권을 끊을 정도로 푹 빠져서 봤다. 조셉 고든 토끼 형님의 연기가 정말 기가 막힌다. 18년에 미국에서 처음 우버를 이용해보고 ‘혁신은 어쩌면 정말 간단할 수 있겠다’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우버는 정말 쉽게 만들어진 서비스가 아니었다. 그리고 성공한 플랫폼 서비스가 어떻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지를 드라마에서 ‘드라마틱’하게 그린다. 완전 강추하는 시리즈!

올해의 넷플릭스 - Stranger Things #4

에디. 사실 작품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야 하는데, 극 중에서 나오는 ‘에디’라는 인물을 먼저 그냥 말하고 싶었다. 넷플릭스에서 가장 사랑하는 <Stranger Things> 시리즈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드디어 공개됐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 스토리가 완벽하지 않으면 정말 분노할 자세로 시리즈 4의 첫 화를 틀었는데, 그 자리에서 정말 간만에 날밤을 새우게 했다. 완벽한 복귀였다. (시즌 4에서 끝나지 않아서 더 좋다 ㅠㅠ)

*올해는 넷플릭스에서 정말 다양한 작품을 봤다. - 기묘한이야기 4, 종이의 집(한국), 소년심판, 로스트 인 스페이스3, 고요의 바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2-3, 수리남, 아리스 인 보더랜드2, 마틸다(뮤지컬 영화) 등

올해의 유튜브 - 빠더너스 <문상훈>

문상훈 <빠더너스>라고 표기해야 하는데, 내가 이 채널에서 집중하고 있는 건 <문상훈>이라고 하는 인물 그 자체였기에 작품으로 <문상훈>을 기억하고 싶어 괄호에 넣었다. 문쌤/문이병/복학생문상훈(feat.찌니꾸)/문기자/오당기 등등 문상후니버스에 구축한 캐릭터가 없을 것 같은 유기성을 가지며 공생한다. 문상훈식의 따뜻하면서 재치 넘치는 웃음이 이 채널의 핵심이다. 다음 콘텐츠가 가장 기대되는 22년의 유튜브였다!


올해의 밈 - 강민경 ‘버티는 거야’

이 밈은 비교적 22년 후반기에 유행을 탔다. 그런데 ‘꺾이지 않는 마음’과 연계를 하더니 막바지에는 SNS를 휩쓸고 다니는 것 같다. 나도 올 한 해를 정말 ‘버티면서 또 버틴다’ 마인드로 보냈기에 이 문구를 올해의 밈으로 선정했다. ‘버티는 거야. 인생은 버티는 거야. 버티다 보면 다 잘될 거야.’

*잘 버티고 버텨서 입사 2주년을 만끽했다.

올해의 콘서트 -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2022

회사 동료의 제안으로 3년 만에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목표는 스텔라장 라이브 콘서트였다. 가을바람이 춥게 불어오는 10월의 호수 공원에서 <I’amour les baguettes paris> 라이브를 들으면서 맥주를 마셨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Damons year, My Aunt Mary, Lacuna 와 같은 인디 가수들을 빵빵하게 알게 된 것도 너무 좋다.

올해의 뮤지컬 - 라이언킹 오리지널

2월. 설 연휴가 끝나고 예술의 전당에서 <라이언킹> 오리지널 내한 공연을 관람했다. 혼자서 보는 것이었기에 좋은 자리에 난 취소표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웅장한 아프리카 전통 악기와 현대 서양 악기가 어우러진 배경 음악에 놀라운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어우러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라이언킹인데 뮤지컬도 정말 즐거웠다. 아마도 나는 원래 뮤지컬을 좋아했었나 보다.

올해의 F&B

올해의 술 - Angelo Primo (와인)

안젤로 프리모. 말해 뭐하겠는가. 내 인생 와인이고, 강남와인 샵에서 발견해서 하루 종일 흥분이 가시지 않았던 와인. 크리스마스 휴일에 이 와인을 소중히 한 잔 한 잔 홀짝이면서 따뜻한 방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게 행복이었다. 오죽했으면 회사 채널에 이 와인을 광고했을까. 지금 또 홀짝이고 싶다.

올해의 안주 - 신림 ‘강남곱창이야기’

회사 동료가 소개해줘서 함께 적신 집. 곱창도 곱창이지만 함께 나오는 두껍고 촉촉한 떡 사리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요상한 가루가 뿌려져서 나오는데 (아마도 치즈?) 진짜 그 가루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올해는 이 집을 2번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완벽했다. 늘 사람이 가득하고 늘 소주를 한 병 이상 마시게 만든다. 최고의 한 잔을 만나게 해주는 집이다!

올해의 기억

올해의 액티비티 - 서핑과 등산

포항에서 정말 오랜만에 서핑을 했다. 분홍색 보드에서 중심을 어캐어캐 잡으려고 노력했다. 하루 종일을 파도와 씨름하고 물 밖으로 나와서 비를 맞았다. 그 전체적인 시퀀스를 아직도 잠들기 전에 한 번 그리고 자면 기분이 정말 좋아진다.

등산. 정말 올 한 해의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고르라고 하면 등산을 고를 정도로 산에 많이 올랐다. (이 회고 글을 적은 오늘도 산에 올랐으니 말이다.) 산에 오를 때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왜 아빠가 매주 주말에 산에 갔는지 알겠다.’이다. 다음발을 내딛기 위해서 지금 발의 위치를 어디로 할지 고민해야 하고 밟는 돌마다 쓰는 다리 근육이 다 다르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간 정상에서는 내가 한없이 작아진다.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그런 경험을 쌓으면서 생각 정리를 많이 할 수 있었다. 내년에는 다양한 산을 올라보는게 내 목표다.

올해의 사건사고 - 강남 물난리와 이태원

가슴 아픈일이 유독 강하게 기억에 남았던 한 해다. 8월에 있었던 강남 물난리는 아직도 우리 회사가 있는 빌딩에 피해를 주고 있다. 이태원은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 여전히 밀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서 ‘이태원을 잊으셨나요?’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많이 든다. 아픈 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시절과 세상이라 조금이나마 따뜻함이 유지되는 것 같다.

*내년에는 아픈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올해의 동네 - 망원동

부산 본가보다 더 많이 방문한 곳이 <망원동>이다. 올해, 정말 망원동과 사랑에 빠졌다. 한강도 있고 큰 시장도 있고 분위기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진짜 친해진 동료가 망원동에 거주하셔서 자연스럽게 많이 놀러 가게 되었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 쌓여가는 익숙함에 기분이 좋다.

올해의 선물

힘들 때 솔직하게 ‘나 힘들어’라고 할 수 있는 소중한 동료와 친구들

올해의 선택에 지정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재영님, 한국님, 태웅님과 친해진 것이 올해의 가장 큰 선택이자 선물이자 내가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준’ 호흡기였다. 정말 소중한 동료를 사귀고 편하게, 즐겁게 이야기 나눴던 순간들이 모두 다 소중하다. 사람으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올해의 가장 큰 선물은 소중한 동료다. 올해 함께 일했던 모든 팀, 회사 동료들과 나의 오랜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

정말 쉽지 않았던 한 해가 이제 끝나간다. 성인이 되고 나서 술을 가장 많이 마셨던 한 해였다. 지난 두 번의 연말 회고에서는 ‘Fuxking 코로나’가 중심이었는데, 그 코로나가 끝나가더니 어디가 풀린 듯이 해방감이 쏟아졌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지내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육체적 건강의 중요성을 인지했으며, ‘바른 육체에 바른 정신’이 있다는 점을 확실히 알았다.

내년에는 또 어떤 시련과 도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되면서도 불안도 강하다. 새로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확실하다. 정말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 상태인지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일 것 같다. 목표를 정하고 왜 그 목표여야 하고, 무엇을 달성하면 그 목표가 되는지 파악해서 어떻게 달성할지 정하는 과정을 남은 연말과 내년 초에 가지려고 한다.

우선은, 이 혼란스러웠던 2가 세 번이나 들어갔던 2022년에 아름답게 안녕을 외친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