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번 블로그는 반지의 제왕 덕후적인 용어들이 제법 나옵니다. 그냥 덕후구나 하고 넘어가주세요. 🧙♀️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원정대’라는 업무 조직이 있다. “원정대?”라고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생각과 더불어 영화 ‘반지의 제왕’의 그 반지 원정대가 생각난다면 정확하게 맞다. 선택받은 호빗 ‘프로도’와 간달프, 아라곤 등등이 팀을 꾸려서 모르도르의 산으로 절대반지를 옮기는 그 반지 원정대처럼 선택 받은 (개인의 선호도가 정말 많이 반영된)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TF팀을 구성하는 것을 ‘원정대’라고 부른다. 어제까지해서 나도 하나의 절대 반지를 성공적으로 모르도르로 옮길 수 있었다.
원정대가 발대하면서 킥오프 미팅을 진행했다. 원정대원들과 기존 컨텐츠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컨텐츠 제작자의 피드백과 실제 소모자들의 피드백에는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말 살벌하게 피드백했다. 우리가 새롭게 디자인할 컨텐츠는 어떤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쳐낼 것은 쳐내고 남길 것은 무엇인지 깊게 논의했다.
피드백에는 항상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이 좋은 쪽으로 “맞아 맞아” 하면서 더 좋은 쪽으로 개발되도록 공유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맞아, 그거 불편해요”가 더 많다. 킥오프에서 나왔던 공통점들도 그랬다. 그래서 기존 컨텐츠를 전체적으로 들어내고, 다른 컨텐츠에 새로운 FILL ME IN을 넣는 방향성을 정했다. 원정대가 모르도르에 도착해야 하는 시기(due-date)가 그렇게 길지 않았기 때문에 스프린트에서 집중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내용을 중점으로 개선 포인트를 잡았다.
원정대 일정 중간에 설 연휴가 있었다. 그래서 연휴 전까지 기존 컨텐츠의 부채를 해결하기로 했다. 플랫폼에서 컨텐츠 자체를 수정하면서 연휴를 기다렸는데, 연휴 이후에 남은 일정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프로도와 샘이 골룸을 만난 느낌이었다. 이 시기에 내가 새로운 컨텐츠도 만들고 피드백도 받고 개선하고 배포하는 전체적인 과정을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원정대 대원에게 긴급하게 콜을 했고, 업무를 빠르게 분담했다. 코스 동기이자 입사 동기인 크루가 함께하는 원정대원이라 편하게 정할 수 있었다. 나는 영어로 적혀있는 컨텐츠를 교육 자료로 사용될 수 있게 번역하는 업무를 배정받았다. 외국 개발자들이 적어둔 양질의 컨텐츠를 번역해서 공부하는 개발자가 많아서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현실로도 너무 공부가 많이 됐다. 한 문장을 번역하면 이해해야 할 것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컨텐츠 번역을 시작하면서 우리 원정대는 헬름 협곡에 들어갔다.
설 연휴에 부산 본가를 내려가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면서 오랜만에 Express로 서버 코드를 작성했다. 원정대의 서버가 Express.js를 기반으로 MySQL 데이터베이스 서버를 연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라우팅을 나누고 MVC 패턴을 기반으로 Model의 Query 요청 메서드, Controller의 요청, 응답 메서드를 구분했다. HTTP 응답 코드가 애매해서 일단 409로 에러를 날렸는데, 이후에 원정 대장님이 잘 찾아보고 알맞는 에러를 알려주는게 좋다고 바로잡아 주셨다.
원정 대장님은 정말로 간달프다.
설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코드를 논의했다. 내가 원정대 업무 말고도 다른 운영 업무에 관계된 부분이 많아서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웠던건 설이 지나자 기적처럼 정부가 거리두기를 2단계로 조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회사가 다시 오프라인 근무로 전환되었고 코드를 바로 바로 보면서 진행할 수 있었다.
원정대에도 나즈굴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 나였다. 내가 나즈굴이었다. 원정대에 집중을 많이 못해서 내 동기가 혼자서 오크와 같은 에러들을 해결해야 했다. 헬름 협곡은 내 자리였고 사방에서 오크들이 밀려왔다. 실시간으로 코드를 비교하고 피드백하기 위해서 동기가 기존 자리를 벗어나 내 옆자리로 옮기는 모습이 헬름 협곡의 새벽을 연상캐했다. 원정대가 끝나가는 시점에 동기의 자리가 완전히 내 옆자리로 픽스된 걸 보면 우리가 정말 치열하게 협업한 건 맞나보다.
중간 중간 여러명의 간달프가 오고가서 컨텐츠 코드가 탄탄해지는 경험을 했다. 로우 쿼리를 오랜만에 작성해서 w3school로 공부했던 그 시절을 다시 떠올려보기도 했다. 여러번 입고 있던 미스릴 갑옷의 덕을 보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비유를 하고 싶은 건지 글을 적으면서도 잘 모르겠다. 촤하하)
원정대의 최종 기한이 다가오면서 내가 배정받은 세션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처음해보는 라이브 학습 세션이라 너무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를 작성하고 설명에 필요한 자료를 하나씩 준비했다. 이미지, 슬라이드, 스크립트를 차례로 준비하면서 1주일 내내 야근을 진행했다. 원정대원인 동기도 매일 늦게 퇴근하면서 나의 리허설, 세션, 그리고 본인의 세션을 열심히 준비했다.
대망의 세션날, 회사는 전사 리모트를 진행했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이 5명 정도였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3시 반 세션을 위해서 정말 쉬지 않고 스크립트를 읽었다. 실제로 진행하는 것처럼 시뮬레이션 하면서 진행했다. 그리고 모르도르의 용암에 절대 반지를 잘 던지고 나왔다. 막힘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에 익숙해지니까 쉴 수가 없었다. 방음부스의 공기가 용암 근처의 뜨거운 열기처럼 달아올랐다. (소설을 쓰고 있네…)
이번에 진행한 원정대 업무는 부담이 컸지만 즐거웠다. 그전까지 동기분과 말을 많이 해보지 못했는데, 원정대때 정말 말을 많이하고 수많은 피드백을 주고 받아서 개인적으로는 되게 많이 친해진 것 같다. 그리고 하나의 컨텐츠를 만드는 것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얻었다. 내가 만든 컨텐츠가 많은 수강생에게 소비되어 지식으로 남는 과정에 희열을 느꼈다.
다음에 또 다른 원정대를 하라고 하면 선뜻 “와 제가 무조건 하겠습니다”는 못 할 수 있겠지만 (이게 본심인가.. 🧙♀️) “하고 싶지 않습니다.”는 절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운영 업무쪽에서도 원정대를 꾸려야 할 부분이 많을 것 같아서 먼저 제안해보고 싶은 마음도 크다. 아라곤이나 간달프 같이 주요한 역할은 못 하더라도 김리, 피핀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