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라 2020년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hankyeolk

가수 전인권님의 노래 가사가 더욱 생각나는 한 해였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는 그 가사가 왜 이렇게 공감이 되는지. 코로나로 집에만 있는 요즘 왜 오늘 이렇게 발에 스치는 웃풍이 더 차갑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올해의 마지막 수요일에 그렇게 지나간 것들에 의미를 되짚어 본다.

아듀 2020

올해의 선택 - 첫 직장에서 퇴사

2019년 4월 말미에 나는 내 인생 첫 직장을 서울에 구했었다. 아르바이트를 한 것을 포함한다면 직장은 여러 곳이 있었지만, 대학 졸업 후 내 선택에 의해 내 뜻을 펼칠 수 있었던 직장은 그 곳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올해 3월 14일에 내 선택에 더 아쉬움이 컸고 아픔도 많았다.

그래도 이 선택을 올해의 선택으로 정했다. 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쉬운 만큼 나는 성장할 수 있었고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 선택에 결정적인 요인은 ‘나 스스로’ 였다. 그래서 더욱 후회없이 2개월의 시간을 충분히 쉴 수 있었다. (물론 엄청 많은 소비로 이어졌지만 😅)

퇴사라는 선택이 지금의 새로운 결과로 갈무리 되었기 때문에 정말로 후회없이 잘 선택했다고 지금 되돌아보며 생각한다.


올해의 책 - 평소의 발견

광고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는 유병옥 작가님의 평소의 발견이라는 책을 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베스트로 꼽고싶다. 퇴사 이후에 직장 동기분께서 추천해주셔서 읽은 책이었다. 마침 나에게 많이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에 읽어서 더욱 좋았던 책인 것 같다.

책의 제목처럼 무뎌져서 잘 발견하기 힘들었던 ‘평소’라는 순간을 되돌아보게 했다. 나의 평소들은 찬란하게 유난스럽지는 않았지만 속속들에서 깨알같은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비빔면을 만들면서 면과 소스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으니 말 다했다.

언젠가 나도 이런 평소의 기록들을 에세이로 엮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의 내꺼 - 맥북프로 16인치

정말 큰 맘을 먹었다는게 느껴진다. 워우. 맥북프로라니. 그것도 16인치로 구매했다. 퇴사를 하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기존에 있던 맥북프로 13인치를 처분하고 16인치로 과감하게 쩜프했다. 🏃🏻‍♂️

결과는 정말 대만족을 넘어선 천상계 만족중이다. 조금 들고다니기 무거웠다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정말 만족한다. 아 아쉬움이 하나 있다면 기존에 60W 정도였던 배터리 용량이 더 커져서 가지고 있던 충전기로 충전이 힘들었다는 부분.

특히 만족하는 것은 넓어진 화면이다. 마그넷 에플리케이션으로 창을 분할해도 넓다는 느낌이 강하다. 내장 키보드도 치는 맛이 더 살아났다. 그리고 스피커가 진짜 정말 좋은 것 같다. 이걸로 넷플릭스를 많이 봤는데 생동감이 넘치는 사운드랄까. 램도 기본 16기가라 너무 만족한다.

요즘 M1 칩으로 더 무장한 맥 시리즈가 나를 힘들게 하지만 이 16인치 맥을 오랫동안 애지중지 하면서 아껴줄 생각이다. 😍


올해의 컴트루 - 코드스테이츠 개발자 과정 수료

올해의 선택 항목에 들어가야하지 않을까 하고 정말 많이 고민을 했다. 하지만, 퇴사가 선택의 영역이었다면 개발자로의 전직, 미래는 내가 항상 꿈꾸고 있었던 부분이라 선택보다는 드림스 컴트루에 보다 가깝다. 그래서 올해의 컴트루에 코드스테이츠 개발자 과정 수료를 당당하게 적는다.

정말 5개월의 시간이 힘들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리고 자바스크립트로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그 시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내실을 탄탄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내공도 쬐에끔 쌓였다. 그리고 내 생일에 조금은 시원하게 수료했다.

코드스테이츠를 수료하고 좋은 기회가 생겨 지금은 코드스테이츠에서 운영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코드를 작성할 시간은 적지만 나처럼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수강생분들을 도울 수 있어서 참 즐겁게 일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지금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 개발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예능 - 유재석

이 시국에 예능만큼 가볍게 소모하면서 많은 즐거움을 창출하는 것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그만큼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좋아한다. 올해는 특히 유느님이 MC를 맡은 예능을 특별히 많이 찾아보고 짤로보고 유튜브 클립 영상으로 돌려봤다.

“놀면 뭐하니”에서는 유재석의 주무기인 토크는 내려두고 치킨과 라면, 하프에다가 90년대 풍의 혼성 그룹까지. 마지막으로 지미유는 정말 유재석의 캐릭터 중 인생 캐릭터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불 원정대가 생각보다 길어서 도중에 좀 루즈하다는 감은 있었지만 이 시국에 가장 큰 즐거움을 준 것은 확실하다.

“유퀴즈”는 유재석과 조세호의 캐미가 5할을 차지하는 것 같다. 유재석의 애착인형 같은 조세호의 모습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퀴즈는 정말 이시국에 가장 대처를 잘한 예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로그램 런칭 당시만 해도 무한도전에서 예전에 mbc 파업때 진행했던 ‘잠깐만’ 코너를 단순히 카피한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국의 유퀴즈는 아마 많은 시청자들에게 최애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까 조심히 예상해본다.


올해의 지배 - 코로나와 그 부속물

정말 별일 아닐 거라 가볍게 생각했던 코로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올 한해를 코로나가 가득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끔찍하다. 작은 바이러스에 이렇게 인간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 다시금 이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로 뒤덮힌 이 시국에 다양한 부속물들이 올해 대한민국을 지해하지 않았나 싶다. mbti를 필두로 한 심리 테스트는 이제 모든 유튜브와 예능의 자막을 담당하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내놓는 기업들도 가벼운 심리 테스트를 하나씩 끼우고 있다. 의무마냥.

비슷한 맥락으로 밸런스 게임이 다시금 인기를 얻었던 것 같다. 밸런스 게임을 마주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으로 밸런스를 잘 맞췄는지 감탄을 할 뿐이었다.


언제 또 12월이 됐는지 모르겠다. 정말 많은 선택을 요구 받은 한 해였고, 다양한 결과가 나에게 쏟아졌다. 이제 몇 시간 뒤면 또 새롭게 1월부터 시작되는 한 해가 찾아온다. 코로나가 언제 종식될 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에 적응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냥 묵묵히 지금의 삶을 살 것 같다.

그래도 올해와는 또 다른 완전히 새로운 순간들이 평소에 들어올 것이다. 기대되고 또 어떻게 펼쳐질지 두근거린다. 정말 고생 많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주면서 이 회고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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