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서 근무합니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 시국에 입사 1달 반 중에서 사무실에 3일만 출근한 썰을 정리해봅니다.

2020년 11월 30일. 나는 새로운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비록 계약 기간이 한정된 계약직 인턴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물론, 나는 인턴이라는 딱지로 내 가치를 한정 짓고 있지 않다. 회사에서 직무 온보딩을 진행해준 동료도 절대로 스스로를 인턴이라는 직책에 한계를 두지 말라고 말했다. 그래서 한계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일하고 있다. (내 느낌상으론 그렇다.)

이번 포스팅의 골자는 인턴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작년 11월 30일 이후로 (심지어 입사 첫날도 재택이었다.) 오프라인 사무실에 단 3번만 출근했다. 이사짐을 정리하러 잠시 방문한 것을 포함하면 3일 하고 2시간이다. 정말 새로운 업무 방식이었다.

지금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다녔던 회사는 구성원이 아주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2020년 초반, 코로나가 한창 퍼저가고 있던 시기에 모든 구성원이 재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수직적인 구조도 아닌 회사에서 형평성을 위해서 전원이 오프라인 사무실로 출근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해야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무실에 나가는 것에 불만이 없었다. 그래도 내부적으로 불만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회사를 옮기고 한 층 더 심해진 코로나로 정부에서는 2.5단계 거리두기 방침을 발표했다. 옮긴 회사는 전체 구성원이 50명이 넘었는데, 이미 재택 근무에 대한 규칙이 충분했고 구성원들도 재택에 적응을 어느정도 잘 한 경우였다. 그래서 주말 저녁에 공유된 전사 재택 근무 방침은 먼거리를 오가면서 여러 사람과 부딪혀야 하는 많은 구성원들에게 좋은 소식이었을 수 있겠다. (물론 코로나는 끔찍하다. 빨리 없어지길 원한다. 😈)

# 너무 낯설었던 첫 주

그렇게 나의 본격적인 재택 근무가 시작되었다. 근무일 전체를 집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주변 정리를 하기로 했다. 어지럽던 책상을 새벽에 일어나서 정리했다. 일단 발표난 2.5단계 조치가 2주짜리였기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모니터의 위치를 바꾸고, 맥북에 열이 좀 더 잘 빠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집에서 마실 커피도 드립백으로 30포 이상 준비했다. ☕️ 탄탄한 준비가 재택근무의 낯섬을 어느정도 가시게했다.

#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고.. 크리스마스 파티도 집에서..🎅🏼

입사를 하고 3주가 되는 시점에도 나는 집에 있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내가 담당할 일이 생겼고, 손놓고 있던 공부도 방향성이 보였다. 그래도 나는 사무실에 나가지 못했다. 어느새 화상으로 진행되는 모든 회의와 업무가 낯설지 않았다. 모두가 흩어진 본인의 공간에서 업무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언제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공유되는 것이 중요했다. 이 주간에 나는 업무에 대한 기록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캘린더에 나의 일정을 잘 기록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도 있었다. 구글 밋을 통해서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는데 정말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많은 사람과 축하하는 경험도 새로웠는데, 그걸 존재하지 않는 웹 상의 공간에서 진행한 것은 더 새로웠다. 재택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경험이 밀물처럼 빠르게 몰려왔다. 화상으로 진행된 파티는 은근히 재미있었다.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모두의 즐거움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들 즐거웠다는 평을 남겼다. 나도 그랬다.

# 재택이 바꾼, 아니 코로나가 만든 화상 시스템의 최대 수혜는 내 배딱지다 🤦🏻‍♂️

다시 출근을 하는가 싶던 주말에 확진자가 1000명 가까이 쏟아지더니, 급기아 1000명을 넘겼다. 급하게 정부는 2.5단계 2주 연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자연스럽게 재택 근무도 연장되었고, 연말 회식도 화상으로 진행되었다. 회사 전체 회의와 팀 전체 회의가 연달아서 화상으로 진행되었다. 아주 훌륭한 우리 회사는 회식비를 인원당 3만원씩 지급했다. 배달 음식으로 사치를 부리기 딱 좋은 정도였다. 실제로 2일 동안 있었던 회식에 피자 🍕, 치킨 🍗, 아이스크림 🍦 등 부족한게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내 배와 허벅지는 감당하기 싫은 상태가 되었다.

재택이 길어지면서 집안일을 할 시간이 넉넉해졌다. 보이지 않던 먼지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여가 시간도 많아졌다. 물른 대부분의 여가 시간이 독서나 개발 공부로 채워졌지만, 온전하게 나의 시간이 많아진 사실은 너무 나를 설레게했다. 그만큼 그 잉여 시간을 잘 사용할 계획을 잘 세울 필요가 생겼다. 때마침 새해도 되었고, 여러가지 계획과 함께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꾸준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 그래서 그 계획들은요.. 그리고, 재택은 어땠냐면요..

나를 업그레이드 시킬 책을 읽어요. 일기를 매일 적어요. 업무 효율성을 높일 방법을 강구해요. 병목 자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개발을 손에서 놓지 않아요. 글을 꾸준하게 적어요. 라고 계획을 정해봤다. 재택이 끝나도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를 변화시키는 계획들로 구성해봤다. 이 계획들 중 목표로 한 수준에 먼저 도달할 것은 어떤 것이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계획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글을 작성하는 오늘도 어김없이 재택이었다.) 재택는 못해봤던 경험을 제공해주었다. 펑펑 내리는 눈을 화상으로 실시간 공유받았고, 충분한 사색도 즐겼다. 명상 음악을 틀고 30분간 그 동안 느껴보지 못한 정적을 즐겼다. 1주일 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셨다. 다양한 경험이 쌓여서 어느새 재택 근무를 벗어나도 되겠다는 결론으로 매듭지어졌다. 그리고 언제든지 재택으로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경험을 할 생각에 설랠 수 있을 것 같다.

주저리를 길었지만, 빨리 이사간 회사의 새로운 사무실에 가보고 싶다. 내 자리는 스프레드 시트상에만 존재한다. 사무실의 그 날선 공기를 빨리 마시고 싶다.